What I think is..
Every little thoughts I have.
오권의 단상들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How do you discipline yourself in terms of writing your script? "
아직 빛을 보지 못 했지만 나에겐 장편 시나리오와 각종 잡다한 글들이 있다.
나의 대답은
“You write everyday. you and your laptop, it doesn't matter if you write a sentence, even a word a day. You will have to keep writing anything out of your brain."
요즘 무엇을 해도 그닥 재미가 없어진 나는 내 머릿속에 있는 것을 보이는 것으로 전환하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그래서 생각나는대로 타이핑을 하고 예전에 썼던 것들은 정리 중이다.
글쓰는 것은 나같이 산만하고 건망증이 심한 사람에겐 그닥 건설적이 될수 없는다는 걸 다시 느낀다.
지금 쓰는 이 글도 왜 한국은 술에 쩔어사나를 파헤치는 글을 쓰다 위스키가 마시고 싶어져 얼음을 꺼내려고 냉동실을 열었다가 술엔 음악이 있어야 해, 음악엔 춤이지 춤을 막 추다가 운동이 하고 싶어진 나는 how to burn your fat 비디오를 보고 땀을 흘리고 나면 배가 고프고...컴퓨터 화면엔 아까 쓰다만 글에 커서가 껌뻑껌뻑.
다시 처음부터 쭈욱 읽어본다.
왜 이렇게 아는 척이야? 웃겨야 된다는 강박증을 버려! 이문장은 도대체 무슨 말이니? 이건 너무 촌스러, 이거 밖에 안되냐? 이 씨발 때려쳐 무슨 글을 쓴다고.
이때 긍정의 내가 나타난다.
원래 취지를 생각해, 누가 읽건 어쩌건 상관없어, 생각을 쏟아내는 배설이라고 생각해. 잘하고 있어.
그럼 나는 또 긍정의 나의 말을 잘듣는다.
온갖 쓰레기 글과 영화를 창작을 한 분들이 계시기 때문에 “아 이런 것도 있는데” 라며 용기를 내기도 하고,
대대로 master piece라고 불리우는 작품들은 길을 잃은 나에게 힘차게 깃발을 펄럭펄럭 거리며 길을 안내한다.
멋이 있건 없건 무언가 순수하게 창작되는 활동의 존재 가치는 신성한 것이므로 나는 계속 쏟아 낸다.
2015. 황사시즌
힘들다.
안 힘든 사람은 없다.
어떤 스토리든 이렇게 저렇게 모든 사람은 힘든 일을 맞이 하고 했고 할 것이다.
그때 마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원인과 해결책을 밖에서 찾으려 한다.
나만해도 생각이 엄청 많고 불만을 2만 5천개즘 품고 살 때인 10대 20대 때는
‘내가 빨리 이 땅을 떠야지’
‘다른 곳으로 가면 나랑 잘 맞는 곳이 분명히 있을거야.’
‘나는 거기서 좀더 행복해질 수 있어’ 라고 생각했다.
나라는 개인이 환경에 절대적이고 일방적으로 영향을 받는다는 전제를 깔고 가는 거다.
그래서 뉴욕으로 갔고 거기서 4년동안 살면서 음식, 땅, 공기, 문화, 언어, 가치관이 완전이 다른 그곳에서 나를 던져 놓고 내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내가 느끼는 행복이 다르게 다가오는지를 실험했다.
많은 사람들, 경험, 희노애락을 맘껏 느끼고 다시 한국에 돌아와서 생각을 해보면 자신이 느끼는 불행의 원인은 모두 자기로부터 나온다는 것이다.
어딜 여행을 하더라도 그 직접적인 경험이라는 것은 자신이라는 요소와의 결합이므로 스스로가 얼마만큼 크고 쿨하고 긍적적으로 환경에 반응을 해나가냐에 따라 인생의 흔적이 각양각색으로 남게 된다.
물론 각각의 환경이 줄수 있는 영향을 간과할 수는 없다.
개인적으로 나는 영어로 이야기를 할 때 좀 더 과감하고 적극적이며 재치있고 사람들과의 거리감을 줄인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국어가 가지고 있는 격식, 나이와 면식의 여부에 따라 달라지는 어미의 사용, 언어의 발음, 사운드 자체가 좀더 캐주얼하고 편안한 대화에는 장애물이 된다.
또한 그 장소가 가진 기본적인 infrastucture, 공공시설, 조경, 그것을 채우는 사람들에서 나오는 에너지가 섞인 그 도시만의 분위기, atmosphere 가 나에게 영감을 주는 횟수, 양도 다르다.
글이 좀 더 잘 써진다거나, 음악이 자주 창작되어지고, 더 자유로운 관계를 맺을수가 있는 점들도 다르며 일상을 즐기는 방법,
예를 들면 볕이 좋으면 센트럴 파크에 가 옷을 벗고 일광욕을 하고 gourmet 샌드위를 즐길수 가 있다던가, 여름밤 링컨 센터 스윙나이트에 들러 분수대 옆 밴드가 연주하는 음악에 춤을 추고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 있다던가 의 일은 여기 서울에서는 할수 없는 일들이다.
하지만, 위의 다른 점들은 음식의 가니쉬같은 거라고 할까.
디쉬의 메인이 되는 스테이크가 아니고 옆에 나오는 아스파라거스 또는 메쉬포테이토와 같은 거다.
아스파라거스 대신 버터물에 삶은 당근같은 것들이 나와도 결국 음식을 먹고 난 다음에 생각나는 거는 고기가 맛있었냐지 당근은 조연일뿐.
뉴욕에서의 아름다운 일상이 없는 서울에서도 내가 얼마만큼 지금의 것을 즐기는지 감사해 하는지 주위의 가치를 얼마만큼 열고 보는지에 따라 나의 행복지수는 달라진다.
2015. 황사시즌
I was gonna be lazy watching Modern family instead of lining up with the whole bunch of old people to cast my vote this morning.
Beautiful sunny day, just had my happy meal, I was in good mood.
Then these ugly, tasteless posters of the politicians with the awkward smiles on their faces and thiss-what-Ive-accomplished-fancy profiles right next to it not to miss abruptly caught my attention.
Standing there thinking, one good argument that I'd been justifying myself not to vote was my single cast wouldn't change the world so I'd rather spend my time for sth more productive (like entertaining myself and fostering my body fat).
You see, I've been perspiring whole my life to be a better person having well- balanced perspective, keen eye to steer the front favoring me.
That's right I am damn cool ( a car passing by, the reflection of my beyonce thigh seen).
and I jumped on the notion that the politic is really the means for us to sculpture the system in a way we want. We shouldn't be a coward giving up on the try.
The effort would have been a swirl in a cup if I hadn't gone for exercising my right today.
p.s- it is time for the voting system to step up though. They should have more advanced tool like a gadget sensing our finger print to identify.
2014, Election season
한국을 제대로 맛 볼려면 아무래도 버스를 타보는게 가장 좋은 방법이다
서서 버스가 오는걸 기다리면 앞에 와서 설텐데
굳이 정류장 맨끝에 있는 버스까지 지각한 중학생마냥 뛰어가서 버스에 올라타는 사람들.
그 꼴이 보기 싫은 쿨한 당신은 다른 사람들을 비웃으면서 버스를 기다리지만 이미 다수의 승객을 확보했다고 생각한 버스기사는
당신 앞을 지나친다.
어쩔수 없다
너도 뛰고 나도 뛴다.
일단 버스에 올라타면 0.005초만에 센서에 지갑을 찍고 얼른 자리를 잡아야 한다.
0.001초라도 늦게 찍으면 어른 아이 여자 남자 상관없이 뒷사람은
"빨리빨리 찍지 뭐하는 플레이?!!! “ 라는
강한 에너지를 쏘아 대기 때문이다.
오 우리는 동방예의지국 양반들이기 때문에 절대 대놓고 뭐라고 안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살벌한 기운만 팽팽하게 감돈다.
자 그 순간에도 긴장을 놓지 말자
버스는 0.00098초만에 F1 레이서 Michael Schumacher를 능가하는 동물적 스타트를 보이며
관성의 법칙을 조롱할것이다.
버스 앞 유리창을 슈퍼맨처럼 뚫고 앞차 트렁크에 스파이더 맨처럼 붙고 싶지 않다면 무조건 보이는걸
잡고 중심을 잡아야 한다.
이런 이유로 당신이 뛰어난 운동신경을 가졌거나 스노우보드로 단련된 균형감각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자리에 앉는걸 권장한다.
하지만 노약자석이나 임산부석이라고 쓰여진 좌석은 비워둬야 한다.
아니 비워두는게 편하다.
나도 피곤한 사람이라구! 좀 앉으면 어때라고 생각하고 그 자리에 앉았다간 어르신들은 꼭 당신 앞에 서서 불쌍하게 힘들어 하거나
곧 호통이라도 칠 기세로 째려본다.
노인들이 버스에 올라탈 확률이 어느 도시보다도 많은 걸 감안하면 뒷자석에 기어가서 찌그러지던가 튼튼한 손잡이를 잡고 균형을 잡는것이
당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훨씬 아껴줄 것이다.
이어폰을 꽂고 매일 듣는 똑같은 음악을 듣고, 오지도 않는 메세지,이메일을 몇번 확인하고 몇번의 급정거와 미친속도로 인한 구역질을 참으며
창밖의 황홀한 황사를 구경하다보면 어느샌가 당신의 도착지에 버스가 다다른다.
마지막 관문.
센서에 지갑찍기
버스타기의 마지막을 장식할 이 부분은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그야말로 김연아의 마지막 스핀돌기같은 모든 인내심과 스피드, 근성이 집약된
피날레가 될것 이다.
왜 내릴때 꼭 다시 지갑을 갖다 대야 하는지 이해할수 없다면 그냥 내려라.
다음날 버스에 오를때 900원 대신에 1800원이 찍히는걸 보고도 쿨하다면.
버스의 뒷문은 천명이 내리든 한 명이 내리든 정확하게 2.5657초 동안만 열리고 닫힌다.
그안에 센서에 지갑을 빛의 속도로 찍고 소닉처럼 뛰어 내릴려면 보통 숙련이 필요한게 아니기 때문에 초보자들은 지갑을 미리찍고 내릴 차례를
기다려야 하는데 혹시라도 눈치없이 센서앞에 서있으면 머리가 엄청 크고 피부가 고무로 만들어 졌을것 같은 아저씨의 손이 당신의 허리를
싸악 스치면서 당신에게 생뚱맞은 백허그를 선사할것이다.
그렇다, 정신없는 버스로 몸과 마음이 쇠해졌을 당신에게 꼭 필요한 백허그.
뭐!?? 어이없다는 듯이 아저씨를 쏘아봐도 소용없다. 아저씨의 900원을 절약하려는 노력에 당신이 방해가 되었을 뿐이다.
누군가 이 버스 시스템을 만든 사람은 평생 버스 안타고 운전만 하는 사람이 분명하다.
한국사람의 빨리빨리 특성을 고려했을때 이건 마치 키가 작고 배가 엄청 나온 뚱뚱한 사람이 하얀 색 스판덱스 쫄쫄이를 위아래로 입고 다니느 거랑
똑같이 나쁜 점을 더욱 돋보이도록 하는 똑똑한 센스의 부재이다.
2011
우리집 옆옆집엔 party bug이 산다.
매주 금요일,토요일 그집 앞마당엔 시끌시끌 외국인들이 술을 마시며 떠들고 있다.
그래서 요일을 신경쓰지 않는 나에겐 주말 reminder인 셈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집을 올라오면서 벌써 금요일이군..
그러곤 집에 와서 잠시 쉬고 있는데
" 삐비빅 취췩"
경찰차 소리가 들린다.
오 드라마?!! 난 주택가 경찰차소리가 좋다. 그 소리는 마치 뭔가 엔터테이닝한
구경거리가 일어난다는 거니까
근데 이 경찰아저씨 소리만
"췩췩...어....엄..취이익췩.... 췩"
말을 안한다.
마치 뭔가 말을 하긴 해야 겠는데 용기를 못내거나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는 그런 에너지가
췩칙 전자음에서 흘러나왔는데 그때 난 경찰차가 어디로 왔는지 알았다.
'파티벌레들 잡으러 왔군.'
밤 10시 반밖에 안됐는데 누군지 몰라도 일찍 자는 늙은 지루한 사람이 경찰에 전활 했음이 분명했다.
역시 내예상은 적중.
경찰이 오자마자 기세등등 하얀 원피스 잠옷의 머리 산발 할머니 출현,
"그만 놀아! 이것들아 잠 좀 자자!"
소리를 질러댔다.
한동안 경찰차 소리가 나다가
이 포린파티벌레들의 노는 소리가 잠잠해지고 경찰차가 없어지고 난,
12시 넘어가자
이번엔 술이 잔뜩 쩌든 파티벌레남 1 이 소리를 지른다.(영어로 물론)
앵그리 한국할머니 흉내까지 내면서 왜 우리 잘 놀고있는데 그 이른시간에
경찰을 불러냐며 목청 좋게 연설을 한다.
완전 열받은 할머니가 경찰에 폭풍전화를 하는 모습이 그려지며
'경찰차가 곧 올테니까 준비를 해야해,'
위스키 한잔을 들고 베란다 R석에 자리를 잡고 있었더니 곧 경찰차가 동네로 들어온다, 2대나
근데 이 경찰들 정말 폼 안난다.
차에서 내려서는 그냥 보고만 있다. 서서보다 지쳤는지 이젠 골목에 쭈구려 앉아 그윽히 관람모드.
Audio
앵그리 할매: "한국말 하는 사람 나와!"
꽥꽥 소리.
한국땅에서 주민의 신고를 받고 출동을 한 한국경찰이 주의를 주어야 할 술취한 외국인의 언어를 하지 못해 어쩔줄 몰라하는 상황.
설상 경찰이 한국말로 카리스마 주의를 줬어도 술취한 그들도 어떤 상황인지는 알고 자제를 했을텐데 수줍은 경찰의 모습에 더 기고만장이다.
경찰분들 영어 못하신다고 창피할 필요도 없고 영어연수 다녀오셔서 원어민 발음과 억양으로 외국인들과 얘기하실 필요 없습니다.
여기는 한국말을 하는 나라이니까요.
물론 영어가 자유로우면 해외여행도 자유롭고 해외사이트 서핑도 자유롭고 각종 뉴스, 기사 리딩도 자유롭다.
하지만 누가 됐는간에 영어만 하면 자동적으로 형으로 언니로 모시면서 금색 영어배지를 달아줄 필요는 없다.
영어 울렁증은 우리 주변에 이끼처럼 어디든 끼어 있다.
좀 걷어 낼까요 이젠
촌스럽게
2014
영화를 보고 나와 청계천부터 명동까지 걷기로 했다.
날씨도 좋고 음악을 들으면서 밤거리를 걷는 건 언제나 기분 좋은 일이다.
(Audio:
Grayson Glimour/ Silence & Youth)
음악에 베이스가 증폭되며 몽환적 똘끼가 돌때즘 저만치 사람처럼 보지만 다리가 네 개인 형체가 불규칙한 리듬으로 움직이는 것이 보인다.
고가도로가 뜯겨 날아가고 빌딩숲에 개울이 만들어지더니 이제는 이 평화로운 서식지에 동물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나보다.
거리가 줄어들자 이 자아를 잃어가는 동물이 조금씩 본능에 더 가까워 지고 있는 것을 볼수 있었다.
순간 카메라, 360도 터닝을 하면서 반경 300m안을 쑥 흩는다.
수퍼 줌인, 클로즈업 샷들.
가로수에 대고 갈린 음식물을 입으로 쏘는 사람,
거리 한복판에서 비명을 지르며 독백연기를 하는 사람,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평소에는 안하던 행인과의 눈싸움을 하는 사람>
금요일 7:30pm,
이 취한 청계천의 모습은 한국 어느 번화가를 가도 쉽게 볼수 있다.
술 소비량에 있어서 러시아 근방 동유럽 부근의 나라들을 꺽고 1위는 못했지만 한국에서 소비되는 소주량은 엄청 나다.
한국에서 이 1500원짜리 에코 그린병이 온갖 잡다한 방식으로 뚜껑이 따지고 매일 방방곡곡 누군가에 의해 소비되는 개수는 유재석, 김연아, 박지성 인기의 합에 당신이 이루지 못하는 꿈의 가짓수를 곱한 것의 개수보다 휠씬 더 많다.
술은 우리의 뇌세포를 파괴시켜 인지, 반응 능력을 떨어뜨린다.
왜 우리는 우리 몸에 독을 넣는 것을 멈추지 않는가. (Audio; 위스키안에 얼음, 딸깍)
마리화나, 코카인, 헤로인 등등의 마약이 철저히 통제되는 한국에서는 이 싸고 간단한 방법이 통용되는 것이다라고 정리하기엔 표피적 부분만을 얘기하는 것이므로 좀더 심오한 철학적 분석을 해보도록 하자.
<클로즈업 of 안경, 정면 Dally out 위스키 잔을 들어 천천히 음미>
사람들은 일상에서 항상 재미를 찾는다.
이 “재미”라는 것은
람보르기니를 잠실대로에서 160km로 밟으면서 여자한테 오럴섹스를 받고 청담동 클럽에 줄 안서고 들어가는 사람에겐 화요일 낮 1시 시골 마을회관에서 할아버지랑 바둑을 두며 옥수수를 먹는 것이 재미이고
언제고 가격을 깍으려는 장사꾼들의 숫자놀이에 넌덜머리가 나는 가구도매상은 아무 생각이 없어 보이는 금붕어들이 어항을 아무 생각없이 왔다갔다 하는 걸 그저 아무 생각없이 보는 것이 재미이고
공부의 스트레스와 엄마의 잔소리로 찌든 고딩에겐 남친 오토바이를 타고 위조신분증으로 클럽에 들어가서 대학생인척 놀다가 술에 취해 화장실에서 자는 것이 재미이고
평일 9 to 5 출근,퇴근,버스,집을 반복하며 지루함에 몸이 터져버릴 것 같은 직장남은 맥주, 소주, 양주, 소주를 반복하면서 마시고 노래방에서 지드레곤 랩을 하는것이 지루함을 잠시 잊게 만드는 재미이다.
곧 행위를 했을 때 쾌락을 느끼는 것, 경험해보지 못한 색다른 그 무엇, 영혼을 만족시키는 “재미”있는 그 것들을 우리는 재미라고 부르며 인간은 죽을 때까지 자신만의 재미를 찾아 걸어간다.
이 삶의 재미라는 것은 개개인의 차이가 있지만 각자가 받는 스트레스를 부분 또는 전체를 상쇄하여 해소시키기도 하고 때에 따라(드문) 경우 상쇄를 하고도 남는 잉여 재미를 느끼는 사람들은 그들 스스로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불행하게도 이 글을 구글 번역기로 돌리지 않고 자연스럽게 읽을수 있는 사람들이 태어난 이 땅에는 잉여 재미보다도 불행, 힘듬, 스트레스를 느끼며 사는 사람들이 대다수인데
내 생각엔 그 이유 첫 번째가 역사에서 온 상처, 한, 슬픔인 것 같다.
오랜 역사를 거쳐 외세의 온갖 침략을 받아오며 한동안은 다른 나라의 속국으로 치욕을 겪은 후 자의가 아닌 덩치 큰 나라들에 이리저리 치인 전쟁으로 나라가 도마 위 고등어처럼 반쪽이 났고 쥐어터진 입술에 이제 겨우 숟가락을 스스로 가져갈수 있을만큼 먹고 사는 지금까지 너무나 많은 피를 흘리면서 영혼을 뒤흔드는 고통을 겪은 나라. 한국.
그 아픔의 냄새는 아무리 씻어내도 남아있다.
기쁜일이 있어도 울고, 힘든거 말하면서 울고, 엄마 생각하면서 울고, 어려운일 생기면 또 울고,
그 놈의 “한”이라는 슬픈 정서가 우리 피에 박혀 없어지질 않는거다.
당장 닥친 상황을 자신의 능력, 체력, 정신력으로 도저히 감당해 낼수가 없다라고 할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외부적 요소를 최대한 이용해 돌파구를 찾게 되는데 그 다양한 것 들중에는 창작, 일, 음악, 운동, 사랑, 기호식품, 등이 있다.
사람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각기 다른 방식대로 그것들을 맘껏 자연스럽게 즐기고 발산해서 다시 힐링되는 환경만 만들어지면 그 힘듬은 어느정도 치료가 된다.
그런데 문제는 그 과정에 부자연스런 요소가 개입을 하면서 사람들의 자연치유를 방해 한다는데 있다.
여기서 그 두 번째 이유가 핀조명을 받으며 등장한다, 교육.
자신이 원하는 것, 생각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며 자라질 못했다는 거다.
다른 사람한테 욕 먹지 않아야 하니까, 뭐든 두루뭉실, 좋은게 좋은 것, 적당히, 중간만, 모르면 가만히, 무난하게 하는 것이 최고의 처세술인 시스템에서 교육을 받으면 자신이 뭘 진짜 좋아하는지 솔직한 자신의 철학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평생 지하철 2호선 러시아워에 고생하고 집 대출금 갚아가며 토요일엔 무한도전을 보면서 평생 그렇게 살아간다.
이렇게 다양성이 거세된 사회는 정치집단, 나라를 이끌어가는 지도부들한테는 상당히 만만한 것이 된다.
무난한 사람들이 문제 많이 안 일으키고 그렇게 사회를 구성하며 살아가 주니까.
그런데 이 다양성의 부재가 사회 전체적으로 사람들에게 필요한 “재미”의 부재를 가져온다는 거다.
사람은 원래 다 다르게 태어나서 먹고 입고 듣고 보고 싶은 것들이 다 다른데 사회 전체적으로 비슷한 것, 욕먹지 않을정도의 것들만 존재하고 다르게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 시건방지고 이상한 것이라고 교육을 하니 이 다양한 사람들은 답답함을 느끼는 것이고
답답하니 마시는 거다.
그 중에서도 간편하고 싼 방식, 매일 밤 정신과상담과도 같은 역할을 하는 친구와 힘든거 얘기하며 술마시기는 자연스럽게 단연 한국사람들의 1등 우울 해소 방법이 되었다.
풍선이 있다.
공기로 가득 찬 빵빵한 풍선이 아닌 공기가 적당히 들어있다.
풍선의 아랫부분을 손으로 쥐면 윗부분이 부풀어 오르고 위쪽을 쥐면 공기는 아래로 이동한다.
부풀어 오르는게 보기 싫어 쥐어짜도 풍선이 터지지 않는 한 공기는 없어지지 않는다.
인간의 욕구라는 것.
아무리 우아한척 양반인 척해도 다들 밥먹고 섹스도 하고 할 건 다 해야 한단 얘기.
겉으로 고상한 걸로 따지면 우리의 성생활도 국립중앙도서관 책정리 된 것처럼 단정해야만 하는데 실상은 가장 저질이고 온갖 불법적인 방법들로 성매매가 이뤄지고 있는 이 나라.
이상한 나라 오권4 에서 다루기로 하겠음.
To be continued....
2015
시리즈 네 번째, 한국의 성매매에 글을 써볼까 하다가 오늘은 비가 와서 딴걸 쓰기로.
뭐든 내 맘.
이 동네로 작년 4월에 이사를 와서 산 지 이제 일년이 되었다.
정확히 세보진 않았지만 우리집 근처 (걸어가도 안 귀찮을 정도의 거리)에는 적어도 우리 할머니(올해 90살, 엄청 정정함, 기네스북 도전!)가 앞으로 살아갈 해보다도 더 많은 커피샾들이 있다.
노트북을 들고 가 커피를 하나 시켜놓고 3시간이고 5시간이고 앉아 시나리오 쓰는 척 하기가 취미인 나는 동네 커피파는 곳을 하나씩 다 가보기로 하였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r, d, t, n 글자 들어간 곳을 들어가고 날씨가 좋지 않는 날은 b, k, s, h 글자를 찾는 식이다.
하루는 운동을 겸해 좀 더 멀리, 그래봤자 홍대, 걷고 싶었다.
동산을 하나 넘고 1평짜리 타코야키 가게를 지나서 앞치마를 입은 풋풋 새파란 미대생무리를 뚫자 커피 냄새와 기름 냄새 나는 곳이 나타났다.
나는 가게 앞 서서 뒷짐을 지고 메뉴를 천천히 검토 후 문을 열고 들어가 앉았다.
굉장히 작은 카페인 이곳은 커피보다도 브런치나 샌드위치가 주종목인 것 같다.
쇼트머리에 안경을 쓰고 굉장히 마른, 현대 구형 쏘나타를 7년째 몰고 있을 것 같은 40대 중반 주인언니, 같은 나이로 보이는 약간 통통하고 동사무소직원느낌의 머리를 묶은 또 다른 언니가 알바로 일하고 있다.
가게가 협소한 관계로 그들의 대화를 들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곳에서 일한지 얼마 안 된 것처럼 보이는 알바 언니와 친하게 지내기 위해 노력하는 주인언니의 모습은 그 작은 카페 만큼이나 소박하게 느껴졌다.
앞서 신중한 메뉴검토를 한 나답게 과감히 ‘아메리카노’를 시키고 쓰다 만 시나리오를 다시 읽기 시작한다.
“안녕하세요”
30대 중반의 아저씨가 들어 온다. 그는 내가 앉은 창가 자리에서 한 테이블 떨어진 자리에 벽을 대고 앉자 마자 핸드폰을 본다.
주인언니는 팬에 불을 댕기고 기름을 붓는다.
주문도 안했는데 음식을 하는 걸로 보아 항상 먹는 것이 정해져 있는 단골 손님인가 보군.
이제 이 가게에는 6명이 앉을 수 있는 공간이 남았다.
그 사이 나의 아메리카노는 알바언니에 의해 정성스럽게 서빙된다.
오늘도 안 써지는 날. 날씨 죽이네, 창밖의 차와 사람들을 구경한다.
“잘 먹었습니다.”
그 단골 아저씨는 벌써 다 먹고 인사하고 창밖의 그림에 섞인다.
그 작은 곳에 다시 나와 카페 언니 1,2 만 남는다.
분명히 그들은 내가 뭘 하든 신경도 안 쓸 텐데, 이렇게 되면 나는 뭔가 생산적인 걸 해야만 할 것 같은 의무감 같은 것이 생기고 인상을 쓰면서 잘 안 써지는 글을 꾸역꾸역 쓰기 시작한다.
나의 그 짧은 초강력 집중타임 동안 언니2 가 어딜 나갔다 까만 봉지를 들고 들어온다.
그녀들은 가게 커플 테이블에 마주 보고 앉는다.
곧 언니1 이 작은 접시를 내 테이블로 들고 온다.
접시 안에는 빨간 떡볶이와 튀김이 담겨 있다. 그리고 집에서 사과 먹을 때 쓰는 쇠포크가 옆에 놓인다.
“혹시 이런거 좋아 하시면 드셔보실래요?”
언니1은 너무 수줍어 하면서 이런 대사를 날린다.
브런치 가게에서 커피를 시킨 손님한테 떡볶이와 튀김 서비스.
“모든 손님한테 다 이렇게 주세요?”
“아니요, 혼자 계셔서.”
“앞으로도 계속 혼자 와야 겠네요.”
나의 이 시덥지 않는 농담에 둘은 또 너무 환하게 웃어준다.
우리 셋은 떡볶이와 튀김을 먹는다. 아주 조용히.
맛있었다.
팬케잌 냄새가 나는 이곳, 김말이 튀김의 레게머리 당면에 떡볶이 소스를 묻히면서 나는 순간 너무나 이 익숙하면서도 시골스런 말랑말랑, 푹신푹신, 끈적끈적, 축축한 고소한 사람냄새 나는 느낌에 웃음이 났다.
형형 색깔의 감동 도미노들이 하나씩 넘어지며 파도를 탄다.
내 맘대로 기네스 북에 도전하는 우리 할머니네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우리새끼들 어서와’ 라며 반기는 식혜, 떡, 한과등으로 가득찬 마루,
이미 가득 찬 검은 플라스틱 봉투에 커다란 사과를 덤으로 넣어주며 또 오라고 인사하는 재래시장 상인,
친구 누구하나 힘들어 하고 있으면 건방진 소리없이 그냥 말없이 술을 같이 마셔주는 오래된 친구들,
잃어버린 줄 알았던 외장하드를 한달이 넘게 지나서 찾으러 가도 웃으며 건내 주는 피씨방 알바청년.
겨울만 되면 아직도 연탄을 태워 난방을 하는 집에 개미들처럼 연탄을 짊어지고 오르는 대학생들.
엄마표 곰탕을 냄비에 넣고 끓이자 국물보다도 더 많은 고기가 둥둥 뜨면서 나는 김 사이로 보이는 ‘고기 좋아하는 우리딸’ 이러면서 음식을 싸고 있는 엄마의 큰손,
한국에 살면 얼마나 많은 순간 이 ‘정’에 감동하는지 모른다.
생활 곳곳에서 개념없는 아저씨, 아줌마들의 행동, 어처구니없는 형식 따위에 진절머리가 나다가도 이런 정겨운 순간에는 이렇게 ‘우쭈쭈쭈 웃어’ 이러면서 나를 안아주고 그럼 나는 금방 또 무장해제.
‘정’
한국을 좀 더 이해할 수 있는, 한국 사람들에게서 만 뿜어져 나오는 따순 색깔의 아름다운 것.
자기일 알아서 각자 잘하면 서로 부탁할 일도 도와줄 일도 없이 깔끔하게 잘 살수 있다고 믿는 개인주의와는 대조되는 가치관을 가지고 우리는 오랫동안 남의 일을 내일처럼, 콩 한쪽도 나눠 먹으며 살아왔다.
선택을 함에 있어 ‘나’보다는 ‘너’에 중심을 두고 내가 지금 당장 손해 보더라도 ‘우리’가 좋다면 다 같이 잘 살 수있다고 믿는 정서.
우리 자식들 먹는 것 같다면서 손님들한테 공짜음식을 막 퍼주는 식당의 경영방식은 사실 경제학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참 말도 안 되는 것이지만 주인은 돈보다도 정을 선택을 하는 것이다. 주머니에 돈보다도 당신들이 베푸는 정에 따뜻함을 느끼며 좋아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만족을 하고 이것은 돈으로는 살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세계 어디를 가도 비슷한 것, 배려, 친절 등은 분명 존재한다. 다 사람사는 곳이니까.
하지만 여기서의 정이란 좀 더 깊고 오묘하며 영혼을 치유하는 그 무엇이다.
가장 흉폭하고 치열한 시대에 가장 위대한 예술이 태어나는 것처럼 우리의 정도 어려운 시대를 거치며 받은 찢기고 쓰린 상처에서부터 기인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영혼을 뒤흔들만한 아픔에는 가슴 깊숙이 들어가 영혼의 중심을 어루만져줄 수 있는 특별한 것이 아니면 안 되었다.
어느 민족보다도 생명력이 강한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 항상 움직였다.
살아남기 위해 힘이 필요했고 경제성장을 위해 빨리 달려야 했다.
나이키 에어맥스를 신고 아이폰으로 심장을 펌프질하는 음악을 들으며 전력질주 후 맥도날드에 앉아서 빅맥을 먹다보니 가슴 한켠이 허전하고 우리는 무엇를 위해 따뜻한 것들을 다 벗어 제끼고 왔나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서구화된 지금의 한국에는 우리의 정, 아름다운 가치들이 다 씻겨져 가고 남질 않은 느낌이다.
오늘은 날씨가 중간이다.
노트북 가방을 메고 나간다.
라멘집 팬무리를 뚫고 100평짜리 화장품가게를 지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리니 재즈와 커피냄새가 흘러나오는 곳이 나타났다.
문이 열린다.
2015
네가 네이버를 쓰지 않는걸 I've never ever 본적이 없어 물어 Naver
이젠 이렇게라도 너도나도 써도 nothing is weird tho 이야기를 해야 yall know that
버퍼 걸린 듯 반복, Who's bringing bucks? Sweep it, 버릇처럼 무조건 you hit it 네이버
검은색 아메바 손수건을 휘휙 말아서 뒤통수에 대고 고개를 들면서 what's up!, 콧대가 올라간 그 순간, 이마와 머리카락이 만나는 곳에 브이 모양으로 매듭을 지어 묶는다.
투팍스타일.
이태원에서 산 엑스라지 티셔츠에 오버사이즈 팀버랜드 부츠을 신고 배기팬츠를 걸친 후 흘러내리는 바지로 서울 바닥을 쓸면서 랩을 하던 시절이 있었다.
you feel me?
그때 랩퍼의 길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갔으면 어땠을까?
장래가 불투명한 혼돈과 불안의 시대인 그때, 네이버가 있었으면 물어봤을텐데.
나 랩퍼해도 성공하겠냐?
(lol, gun on my head)
아침에 차에 시동을 거는데 차 핸들이 안돌아 간다거나,
기초대사량 증진에 좋은 음식이 뭔지를 알고 싶다거나,
거실에 전등을 갈아 끼워야 하는데 와트는 뭐고 전력소모량이 뭐고 모를 때,
해물파전을 해먹고 싶은데 엄마는 전화를 안 받을 때,
노트북에 악성코드가 깔려 인터넷을 열자마자 창이 60개가 한꺼번에 뜨는 현상을 경험할 때,
등등등 에세테라 에세테라.
우리 모두가 한번 쯤은 다 이런 시시콜콜 자잘한 것들이 알고 싶을때가 있었을 것이다.
한국에는 위의 모든 해답을 찾아 주는 신통방통 웹사이트가 있다.
NAVER.
국가 전체 인구의 4분의 1이 같은 영화를 극장에서 보는 나라에서만 가능한, 인터넷을 사용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하루에 한번 이상 사용하는 이 명실 공히 국민 웹사이트는 아래의 승자들과 함께 명예의 전당에 올라갑니다.
라면은 농부의 마음.
소주는 사슴의 모닝 드링크.
맥주는 카카오스토리.
과자는 빠다꿀감자.
이런 초집중, 쏠림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북한의 수만명의 사람들이 한꺼번에 정사각형 보드를 돌려 독재자 얼굴을 짜잔하고 보여줬을 때 그 단결력에 얼마나 놀랬나? 그에 버금가는 녹색물결이 싸우쓰 코리아에는 매일 출렁출렁 거린다.
아이디와 비밀번호만 있으면 자신의 의견을 언제든지 댓글로 달아 올릴 수 있는 이 판은 그 모든 정치인들과 연예인들이 무서워하는 민심이라는 것이 만들어지는 곳이다.
언뜻 보면 물리적인 제약으로 실현되지 못한 고대 그리스의 직접민주주의가 실현되는 장 인것처럼 보인다.
여기서 생성되는 민심의 연기는 때로 몇몇 사람들의 인생과 커리어를 끝장내는 검고 붉은 인정사정없는 흉악한 칼이 되기도 하고 인성테스트를 통과한 예쁜 순딩이들을 하늘 높이 붕붕 뛰워주는 하얀 빛깔 솜사탕 구름이 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이 댓글이라는 걸 한 번도 달아 본적이 없는 나는 일부러 이 단체 활동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다.
간단히, 이 댓글을 다는 것보다 더 중요한 해야 할 일들이 항상 있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내 일 이라든가 말이다.
예전 인터넷 댓글 때문에 연예인들이 죽어나갔을 때도 읽지 않았던 걸 일부러 이글을 쓰기 위해서 그동안 이슈가 되었던 인물 중심으로 찾아 읽어 보았다.
What? Get a life!
자신의 인생 모든 것이 이 이슈를 향해 포커스가 맞춰져 있는 것처럼 그 관심의 정도가 지나쳐서 깜짝 놀랐다.
전지현이 사용하는 방부제는 어디서 살 수 있는지 알고 싶다거나 권력이 찢어지며 남긴 피자국에는 어떤 숨은 메시지가 있었는지를 풀어본다거나, 영화가 재밌었다, 구렸다든가를 얘기하는 것은 이해가 된다.
하지만 한낱 방송물의 연출에, sns에 남긴 연예인의 말 한마디에, 자신의 사활이 달린 것처럼 달려드는 댓글을 읽다보니 도대체 이 사람들은 뭐하는 사람들인가, 자기 인생이라는 것이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든다.
민주주의 헌법에 보장된 개인의 표현의 자유라는 것이 있으니 이것 또한 해라 마라 할 성질의 것도 아니다만, 얻는 것도 없는데 남에 일에 이상하게 관심이 많은 이 오지랖과,
자신의 기호에 맞게 최적화된 삶을 영위하는데 있어 그 선택의 수가 현저히 적은 환경을 얘기하고 싶다.
어떤 창작물이 엄청난 대중성을 갖게 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도 아니고 이상한 것도 아니다.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경제적, 효율적으로 맘에 들게 충족시켜주면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찾는 것은 당연하다.
어떨 땐 그 대중성 자체가 대중성을 추가로 부르는,
남들이 다하니 나도 해야 한다는 군중심리가 휘몰아칠 땐 뭘 사는 지도 모르고 줄에 서서 기다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우리나라 총 인구수는 51,378,174명, 세계 26위.
지리적 물리적인 요소를 따져보고 상대적으로 봐도 결코 적은 수가 아니다.
그런데 이 많은 사람들이, 세계 최고 수준의 테크놀로지와 경제 인프라를 갖고 있으면서도 실상 즐기고 사용하는 것들이 소수에 국한되어 있다는 사실이 이상하다고 생각 안 해봤나?
안 해봤다면 니가 바로 내가 얘기하고 싶은 소재이다.
주체성 결여, 사대주의, 수동성, 간단히 그냥 뭘 원하는 지를 모르는 것.
기사도 항상 네이버로만 보니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를 초록색 안경을 통해 보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주체적으로 무언가에 확신을 가지고 리드를 한다기 보다는
누군가가 이름을 붙여주고 의미를 부여해주고 가치를 메겨주는 것을 항상 기다린다.
그래서 선도, 전례가 없는 일에 대해선 괜히 하면서도 불안해 한다.
중국에서로부터 유교라는 것이 들어오기 전부터도 나를 낳아주고 길러준 부모를 존경하고 아끼는 마음은 계속 있어왔을 것이다.
우리보다 잘나고 더 많이 알 것 같은 따거나라 중국에서 공자라는 훌륭하신 학자가 ‘인’에 바탕을 둔 인간의 도덕성에 대한 이해를 ‘효’와 ‘제’를 강조한, 가족의 통합을 시작으로 하여 더 나아가 조직, 사회, 국가의 화합으로의 접목을 얘기하니,
아항, 우리가 해야 할것이 이것이로 구나 이러면서 더 오버하기 시작했다.
‘덕업은 서로 권하고, 솨실을 서로 따르며,
예에 맞는 풍속은 서로 사귀고,
재앙과 어려운 일은 서로 도와라’
라는 것들을 자식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했던것인데
이렇게 우리는 연대성을 덕으로 삼고 어른에게 가르침을 받고 따르는 것에 익숙해져서 무언가 강력한 지침이나 지도에 대해선 의심을 품지 않고 따르는 경향이 있다.
왠만하면 알려준대로 하려고 하는 게 프로그램처럼 탑재 되어 있다고 할까.
그래서 다른 가능성에 대해서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것이 틀릴 수도 있는데 더 좋은 것이 있을 수도 있는데도 눈 앞에 있는 것만 본다.
이렇게 수동적인 선택을 하며 살다 보니, 해외여행이나 유학을 가서 정말로 주체적으로 행동해야 할때는 혼란스럽다.
남들 다 먹는 인기상품이 딱 정해져 있지 않아서,
장을 보러 마트에 가서 간단히 우유에 시리얼만 사려고 해도 한국에선 그냥 캘러그와 남양인데 거기에는 초쿄, 곡물, 과일, 견과 등 다양한 맛들에 설탕이 몇 퍼센트 들어갔느냐에 따라 또 분류되고 글루 프리에 홀 윗에 그 가지수만 100개가 넘는 시리얼에 우유는 지방이 아예없는 스킴 밀크, 저지방 비율도 10% 30% 45% 75%등으로 다양하고 담기는 용기도 종이 박스, 병, 큰 갤런 플라스틱등으로 나뉘며 선택장애를 일으키게 만드는 것이다.
지금까지도 들을때마다 소름이 돋는 무서운 얘기중 하나가
자연상태에서 5미터를 뛸 수 있는 벼룩을 5센치 컵에 한동안 가둬두면 컵을 치워도 5센치만 뛴다는 거다.
맨처음 접한 술도, 제일 싸면서 평소에 삼겹살을 먹으면서 주문할수 있는 것도 소주라 결국엔 제일 잘 맞는 술이 소주가 되어버리는, 외부적 환경이 입맛까지도 바꿔 버리는 결과를 낸다.
처음엔 그냥 내가 뭘 좋아하는지를 모르는 것에서 시작했는데 결국 내가 좋아하지 않는 것을 좋아하게 되는 것으로 끝이 난다.
그런데 내가 소름이 돋는 부분은 내가 좋아하지 않아야 하는 것을 좋아하게 된 것에 대해 아무런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고 그렇게 된 원인을 바꾸지 않고 살아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특히 고급지고 단단한 정보부터 쓰레기급까지 너무나 많은 정보가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우리에게 쏟아지는 지금의 환경에서 스스로의 주체성과 '보는 눈'이 없으면 금방 이익집단의 수단에 흔들리기 쉽다.
위로 뚜껑이 닫힌 사실상의 섬나라에 살고 있는 우리는 많은 교류를 해서 좀 더 다양한 것을 봐야한다.
더 많은 것을 보고 만져보고 냄새도 맡고 직접 느끼며 자신한테 맞는 그것을 찾아라.
정보를 이용하는 주인이 되라.
이렇게 얘기했더니 자 그럼 나한테 맞는 여행지는 어떤 곳이 좋을까요? 네이버선생한테 또 물어본다.
좀 모르고 살아도 된다.
오히려 몇 번의 타이핑으로 답을 너무 쉽게 빨리 찾아버려서 재미를 놓치고 산다고 생각 안해봤나?
내가 랩을 계속 해도 될지 말지 고민하던 그 당시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 조언 따위 없어도
나는 그 길을 가지 않는 현명한 선택을 했다.
내가 찾은 그 답은 대학로 지하 공연장에, 동아리실 소주로 끓인 신라면안에, 강남 대형기획사 비디오안에, 홍대 놀이터 안에 있었다.
이래도 컴퓨터 끄고 안 나갈래?
201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