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오권

영화감독

 

Kwon Oh

Director, Producer, Writer

Currently based in Los Angeles

 

kwonfilms@gmail.com

Kwon Oh is an award-winning filmmaker with a background in internationally producing and directing compelling films ideas and release of reputable short films.

She has worked on numerous TV shows, music festival covers, concerts, and educational videos in Seoul, Korea

Behind the TV producer/director career in Korea, she moved to New York, studied filmmaking at New York University where she recognized her talent and passion in filmmaking.

Ever since then, she has been focusing on producing films in New York and consistently creating cutting-edge ideas for future projects.

For her latest action short film, HERO, went to 4 different film festivals all over the world and won the Platinum Award CineRockom International Film Festival 2015.

She is currently working on her new film projects in Los Angeles.

Film excites me.

It is my passion, my purpose.

From the moment when an idea first truly blossoms, to the light of a screening reflecting off the eyes of an audience, I have found no greater thrill in life than that of the film making process.

 

While I was exposed to film from an early age, the real seduction began for me at sixteen. It was a time when I had found myself not only feeling suffocated by the lack of variety in my life, but also the constant academic pressures of Korean culture. Film served as my escape, a portal to the kinds of people and places that existed beyond what I could find in Seoul. So ravenous was my thirst that many a late movie night slipped into early mornings, more often than not resulting in me not making my way to school until well past noon. And while I may have been arriving late with an empty bag upon my back, you can be sure I always had a swagger in my step and a new story to tell.

 

Cut to 2005, where I found myself riding a yellow cab into the depths of Manhattan. Amidst all the diversity, the energy, the sheer majesty of the towering city around me, everything just clicked. I knew then and there that I could no longer simply consume film. I needed to create it. A week later I was enrolled at NYU, and I’ve never looked back.

As a filmmaker, I want to tell the stories that haven’t been told.

I want to excite you.

I want a sixteen-year old girl somewhere across the world to not care that she has school tomorrow, because the Kwon Oh film she’s watching is blowing her fucking mind.

 

영화와 방송의 차이점을 설명을 할때 내가 항상 드는 비유가 있다.

영화:방송=책:신문

영화는 오랜시간동안 수없이 소비되는 커피와 담배의 고뇌로 책 내용을 채운 후

디자이너와 여러번의 투쟁으로 점철된 표지로 마무리되는 그야말로 만든자의 취향이 듬뿍 들어간 하드커버, 300페이지 분량의 책같은 것이고

방송은 우리가 눈꼽도 떼기전에 가운차림으로 한손에는 커피를 들고 슬렁슬렁 걸어가 집어서 읽는 신문같은 것이다.

그날 그날 일어난 온갖 잡다한 일들, 가십거리들, 실생활에 유용한 깨알같은 정보들이 가득 담긴 신문처럼 방송은 현재에 집중하고 즉각적인 트렌드를 담아 대중에게 엔터테인먼트를 제공하는데 그 목적을 둔다.

공기 air로 퍼져 실시간으로 바로 소모되어지는 방송.

빛 light으로 쏴서 장소와 시간을 뛰어 넘는 여행을 가능하게 하는 영화.

신문은 바로 버려지지만 책은 책장에 꽂여서 남는다.

 

방송은 소비되는 것도 빠르지만 그만큼 만들어지는 과정도 빨라야 한다.

옛날 옛적 방송국 조연출시절, 가편집실에서 조금이라도 시간을 들여 '정성껏' 편집을 하고있으면 사수라는 작자들이 와서 꼭 한마디를 하고 간다. 

"예술하냐?"

맞다. 어차피 내일이면 이빨자국난 베이글, 크림치즈와 함께 쓰레기통여행을 떠나는 그 아이를 굳히 예쁘게 만들 필요가 없었다.

이후 젊은 나의 주특기인 호랑이눈 권법, 깡, 배짱으로 어린 나이에 PD, 팀장까지 했지만 나는 그때도 채워지지 않았다.

그럼 '나는 내 예술을 해야지' 라고 결심후 뉴욕으로 가서 영화를 공부하고 그 다음엔 내 영화를 찍겠다라는 계획을 세우고 간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한테 왜 뉴욕에 갔냐고 물어 봤었다.

“I watched too much Sex and the city."

그때마다 내가 이렇게 대답하면 그들은 웃으면서 눈으로는 그래서 네가 진짜 간 이유가 뭐야 라고 나를 말똥말똥 쳐다보는데 나 진짜로 그 쇼를 보고 뉴욕에 가고 싶었다. (농담일까?)

나중 어퍼웨스트 사이드에 프로젝트빌딩에서 렌트를 800불씩이나 내고  러시안 룸메이트와 알뜰한 뉴욕커로 살 때다.

그날도 값싼 커피를 찾아 96가 스타벅스에 문을 열고 들어가는데 어린 소녀와 유모차를 힘들게 끌고 들어오는 아줌마가 눈에 들어와서 문을 잡아 줬더니 그녀는 너무 환한 미소와  함께 이상하리만치 높은 톤으로 인사했다.  

그 노메이크업, 턱두개 백인 아줌마가 섹스엔더 시티의 미란다역할을 한 신시아 닉슨이었다.

“Your show was the reason why I‘m here."

신시아는 내가 뉴욕으로 오는 문을 열어줬고 나는 그녀가 스타벅스로 들어가는 문을 열어줬다.

인생이란..

 

처음 1년동안 매주  보고싶었던 브로드웨이 뮤지컬, 콘서트들을 찾아다니며 보고 수많은 파티, 진한  연애를 하며 놀다보니 극행복우울증 같은것이 왔다. 극복차 이제는 뭐 좀 폼나는 걸 배워보자 해서 16mm 필름메이킹을 배웠다.

매주 매주 교수가 주제를 주면 우리는 같은 조 학생들과 뉴욕대 근처 Blanket Zone(대학근처 워싱턴스퀘어 안에서 뉴욕시의 허가를 따로 받지 않고 맘껏 촬영을 할수 있는 곳)에서 Arri 카메라로 촬영을 하고 클래스에서 그것을 다같이 보고 의견을 공유했다.

클래스내 유일한 한국인인 나는 매주 클래스의 에이스가 되어갔다.

 

“You are a cinematic genius."

"Don't forget me when you get an Oscar."

 

클래스 메이트들의 이런 희망찬 말에 자신감은 있었지만 아직 뭘 제대로 했다라는 느낌도 없었고 확실히 이거다 라는 영화불이 가슴에 붙진 않았었다.

나의 한계를 시험하는 파란만장한 첫 번째 작품의 촬영을 끝내고 나는 영화만들기가 어떤것인지 정확하게 알았다. 

나는 세마리의 장어들이 밥을 덮은 장어덮밥을 시켰는데 기타피크만한 장어 쪼까리에 밥을 덮은 장어밥무덤을 실제로 받은것.

폼나는건 잠깐이고 고생이 주가 되는게 영화감독의 팔자다.

운이 억세게 좋으면 주연배우랑 연애도 하고 포르쉐를 몰고 촬영장에 슈퍼스타처럼 등장할수도 크레인위에 올라가 위스키를 마시면서 다음장면을 생각할수도 있겠지만 영화를 찍겠다고 결정한 순간 부터 추위,더움,슬픔,좌절,고뇌와 같은 것들은 견뎌낼 의지가 있어야 한다.

역시 영화는 찍는게 아니고 보는 것이 최고지라고 생각했다.

 

핫튼 그날은 가편집분을 교수랑 같이 컴퓨터 앞에 앉아서 보고있었다.

이 교수를 묘사하자면,

스머프의 가가멜처럼 생긴, 마른 오이같은 느낌의 백인 아저씨와 할아버지의 중간단계 사람으로써 아시아 어디즘에서 온 여자가 영화를 배우고 있다는 것에 놀라움 반, 신경안씀 40%, 무시 10%정도 태도를 학기 내내 보여줬었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크레딧이 시작할 때즘 나는 스페이스바를 눌러서 영상을 정지를 시키고 교수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피드백을 기다렸다.

근데 이 교수, 나를 보지도 않고 다시 스페이스바를 탁 치더니 팔짱을 끼고 엔딩크레딧 끝까지 영화를 다 보고 천천히 뜸을 들이면서 나에게 이런 말을 해줬다.

 

“You know Martin Scorsese has studied here at NYU.

He is a well known director, has made great movies.

But people don't even know of Martin Scorsese's very first film.

Kwon, this, your first short film will be watched later after you become famous.

You are the one of the best students I've taught.

You are talented. Don't forget it.

You should keep making films."

 

그 가가멜교수의 말은 아직까지도 내가 가끔 내 재능에 대해 질문을 할 때,

온갖 장애물과 수많은 다른 재능들에 쫄아서 어두운 무대위에 어깨를 늘어뜨리고 서있으면

어디선가 “STRIKING!" 하면서 무대를 환하게 비춰준다. 

AFM.jpg
Anchor 1
  • 페이스 북 블랙 스퀘어
  • Instagram 기본 블랙
  • 414111_10150733178443949_1760089689_o.jpg
bottom of page